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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bwfeil37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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엊그제 내린 폭설 탓인가 보다. 소나무가 어찌 허깨비처럼 뿌리째 뽑힐 수가 있을까? 겨울의 정취를 물씬 느끼고, 시련을 겪고 나서도 변치 않음을 상징하는 세한삼우歲寒三友)가 대나무와 매화나무 그리고 소나무가 아니던가. 그런데 저렇게 가볍게 쓰러지다니……. 뿌리 깊은 나무라면 저리되지도 않았을 거다. 사람들은 자신과는 아무런 상관없는 듯, 무에 그리 바쁜지 쓰러진 나무를 무심히 스쳐간다. 이런 저런 생각이 많아지는 순간이다. 빈 산에 떨어지는 산과 한 알이 문득 온 우주를 흔든다. 존재의 뿌리까지 울리는 이 실존적 물음을, 천 년 전에는 왕유王維가 들었고 지금은 내가 듣고 있다. 이런 소리는 빈 방에서 혼자 들어야 한다. 아니면 들어도 들리지 않는다. 예전 서원의 나무가 서 있던 자리에 강물이 흘렀다는 걸 뒤늦게 알았다. 그 자리를 대지로 만드느라 성을 쌓듯 흙으로 매웠다고 한다. 땅속에 묻힌 버드나무 일부분까지 상상한다면, 아마도 거목일 게 분명하다. 아마도 나무의 바람은 귀향이지 싶다. 나무의 우듬지가 그걸 증명하고 있지 않은가. 그렇게 생각이 도니 가슴이 먹먹해졌다. 물과 흙은 토양이 전혀 다른 물성이다. 대지에 발을 묻고, 머리를 강가로 향한 나무는 귀향을 꿈꾸고 있었던 것이다. 눈에 보이는 세계가 전부가 아님을 확인한 셈이다. 인간은 눈에 보이는 것만 믿으려고 한다. 그 이면에 숨겨진 진실을 외면하는 일이 종종 있잖은가. 조금만 관심을 둔다면 알고도 남을 일이었다. 내 눈앞에 보이지 않는 세계, 그 세계를 알려면 적어도 나무의 이력과 그 자리에 역사를 어느 정도 파악해야만 했다. 세상은 모든 일은 드러누운 나무처럼 겉으로 드러난 모습과 속내가 다를 수 있다. 물론 비슷한 부분도 있으리라. 그러나 겉모습만 보고 그 사람을 판단할 수 없듯, 그의 마음을 읽는 일을 간과해서는 아니 된다. 나 또한 곰곰이 뜯어보면, 가면을 쓰고 있을 때가 있다. 남들이 나를 말할 때 카리스마 넘치고 당당하며 카랑카랑한 목소리의 주인공이지만, 내가 보는 나는 소심하고 가녀린 갈대처럼 흔들릴 때가 잦으니까. 강한 척 나를 포장한 것은 변명 같지만, 경쟁에서 밀려나지 않기 위한 안간힘이다. 그래, 나를 지키기 위한 본능적 보호쯤으로 해두자. 내면은 이해타산을 초월한 자연에 은거한 선비다운 면모가 되고 싶어 애쓰고 있잖은가. 내면의 차이를 어찌 눈에 보이는 자태로 표현할 수 있으랴. 내 깜냥으론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세계의 차이를 가늠할 수가 없다. 지구만큼의 크기, 아니 우주의 넓이만큼 클 수도 있기 때문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를 찾아 드러내는 일, 그리고 시각 차이를 줄이는 일, 아마도 그건 내가 죽도록 해야 하는 작업, 글쓰기이리라. 정녕 그 일을 사명처럼 해야 한다면, 앞으로 내가 할 일은 엄청나다. 그러려면 우선 겉으로 드러난 부분보다 내면의 도를 닦아 심안과 혜안을 넓혀야 하리라. 왕버드나무는 아마도 세상일을 달관한 자, 아니면 모든 걸 비우고 자연으로 귀향한 자일 것 같다. 그리 생각하니 나무가 그리워진다. 땅풀림머리 전, 매얼음 속 수런거리는 버드나무의 내밀한 이야기를 듣고 싶다. 이번에는 눈보다 마음을 먼저 활짝 열고 보련다. 겨울잠에서 깨어난 나무는 나에게 말을 걸리라. 소리 없는 수런거림에 내 가슴은 벅차리라. 우리 집 작은 방 벽면에 수묵화 한 점이 걸려있다. 사방이 겨우 한 뼘 남짓한 소품인데 제목은 <귀우도歸雨圖>이다. 조선조 중기 이정李禎이란 사람이 그린 그림의 영인본이다. 오른쪽 앞면에는 수초水草가 물살 위에 떠 있고 어깨에 도롱이를 두른 노인이 막대를 비스름하게 쥐고 있다. 간단하면서 격조格調높은 그림이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나는 흐르는 강물과 그 위에 배 한 척이면 그것이 실경實景이 되었건 그림이 되었건 간에 무조건 좋아하는 버릇이 생겼다. 그래서 한국 문화재보호협회에서 보내준 안내문을 보게 되자 곧바로 달려가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저속한 인품의 바닥이 보이는 문필의 가식 우러날 것 없는 재강을 쥐어 짜낸 미문(美文)의 교태(巧態), 옹졸한 분만(憤?), 같잖은 점잔, 하찮은 지식, 천박한 감상(感傷), 엉뚱한 기상(奇想), 이런 것들이 우리의 생활을 얼마나 공허하게 하며 우리의 붓을 얼마나 누추하게 하는가. 멋있는 사람들의 멋있는 광경을 바라볼 때는 마음의 창이 환히 밝아지며 세상 살 맛이 있음을 깨닫는다. 그러나 요즈음은 멋있는 사람을 만나기가 꿈에 떡맛 보듯 어려워서, 공연히 옛날 이야기에 향수와 사모를 느끼곤 한다.선조(宣祖) 때의 선비 조 헌(趙 憲)도 멋있게 생애를 보낸 옛사람의 하나이다. 그가 교서정자(校書正字)라는 정9품의 낮은 벼슬자리에 있었을 때, 하루는 궁중의 향실(香室)을 지키는 숙직을 맡게 되었다. 마침 중전이 불공을 들이는 데 사용할 것이니 향을 봉하여 올리라는 분부를 내렸다. 반달 같은 골무를 보면 무수한 밤들이 다가선다. 잠든 아이들의 숨소리를 들으며 민첩하게 손을 놀리던 우리 어머니, 그리고 우리 누님들의 손가락 끝 바늘에서 수놓아지던 꽃 이파리들, 그것은 골무가 만들어 낸 마법의 햇살이다.모든 것을 해지게 하고 넝마처럼 못쓰게 만들어버리는 시간과 싸우기 위해서, 그리움의 시간, 슬픔의 시간, 그리고 기다림의 온갖 시간을 이기기 위해서 손가락에 쓴 여인의 투구 위에서는 작은 꽃들이 피어나기도 하고 색실의 무늬들이 아롱지기도 한다. 눈길도 알아채지 못하는 남자. 아무것도 모르는 그 남자. 아무것도 모르는 낡은 작업복 속 엉덩이. 그래서 숨탄것들은 사계절을 지켜봐야 그의 모습을 제대로 안다고 했던가. 사람도 마찬가지일 성싶다. 생면부지인 사람의 속내를 어찌 첫 대면에 알 수 있으랴. 수십 년간 곁에 둔 사람의 마음도 제대로 읽지 못하는데 말이다. 그러니 여름 한 철 본 나무의 생애를 어찌 안다고 보았다고 말할 수 있던가. 0.png
누가 수필을 반쪽 문학, 얼치기 문학이라고 하는가? 산에 가면 남자자위기구 러브젤 sm용품 아버지 앞 작은 다탁에는 포도주에 생강 절편, 가위로 꽃문양을 낸 구운 오징어, 잘 깎은 사과 들이 얹혔다. 나름대로는, 귀한 손님들에게만 내놓는 우리 집 접대용 주안상이었다. 그날의 귀한 손님은 바로 나를업고 집에 데려온 인부였다. 인부는 그나마도 감지덕지했는지 죄를 지은 사람처럼 굽신거리며 아버지가따르는 술을 받았다. 애가 참 똑똑하다고, 주소를 또박또박 말해서 집을 잘 찾아올 수 있었다고 인부가 말했고, 아버지는 소리내어 웃으면서 다시 인부의 술잔을 채워주셨다. “--올시다” 하는 아버지의 독특한 어투도 여러 차례 발휘되었다. ‘아직 어린’ 나이에 ‘탁월한 기억력’으로 집 주소를 기억해 ‘또렷한 발음’으로 말해서 살아서 집에 돌아온 나는 적어도 그날 하루만은 우리 집에서 참으로 귀하디 귀한 아들일 수 있었다. 급한 물살에 격랑이 일 듯 때로는 턱없이 뛰는 가슴, 그런 가쁜 숨결부터 다스려야 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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